겨울의 내부
박재우
새는 생애에 딱 한번 몸을 바닥에 누인다고 한다
가는 가지를 움켜쥐느라 갈래진
두 발 나란히 눕히고
한눈으로 자기가 도약한 곳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눈이 땅을 후벼 들어간다고 한다
온몸에 일어선 물결이 그를 어디론가 떠밀고 간다
그 어디는 누운 새와 나뭇가지의 거리쯤이라고 한다
그 거리에는 나무의 그늘이 파본처럼 쌓여 있고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바람의 붉은 목젖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어스름 같은 빛에 들어
읽히지 못한 채 쌓여 있는 책을 들춰 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그러다가 모든 문장이 목젖을 잃고 쓰러진 바람의 이야기
로 끝나기 전에
어둠 한 채 딱 들어맞는 문을 걸어두는 것이다
의미를 다 쓴 새는 이미 새가 아니듯
생의 미동을 잃고 누워있는 물결,
대지에 겨울이 왔다, 대낮인데
밤의 염장이가 와서 대지의 두 발을 묶고
두 손을 묶고 허공으로 꺼져 들어가는 두 눈을 덮고 갔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안다
새의 눈알이 땅을 끝없이 후벼 들어가기에
그곳은 또 다른 공중, 나무는 맘껏 뿌리 뻗고
얼어붙은 물결 속에 여전히 강은 흐르고 있다
그게 겨울의 내부라면
그는 이제 무엇을 시작하는 걸까
열기 위해 닫혀있는 문,
닫히기 위해 열려야 하는 문이 있다
그는, 끝나지 않는다
2023년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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