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성악설
이정록
연통 속이 검어질수록 세상은 따뜻해진다.
속이 탄다는 말, 젖은 목장갑도 희고 둥글게 마른다.
근작시
진달래꽃
그럭저럭 사는 거지.
저 절벽 돌부처가
망치 소리를 다 쟁여두었다면
어찌 요리 곱게 웃을 수 있겠어.
그냥저냥 살다 보면 저렇게
머리에 진달래꽃도 피겠지.
그럴 때가 있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줬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웹진님Nim 202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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