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시멘트 중독자/이영숙

Beyond 정채원 2023. 4. 29. 14:34

시멘트 중독자

 이영숙

 

사람들은 왜 자다가 깨어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서서 물을 마시지?

팔꿈치 관절이 굳어가는 마네킹이나

꿈을 꾸다 제소리에 놀라 깨어난 봉제 인형처럼

 

가령, 날아가며 똥을 날리는 새들이나

추억을 되새기는 사람의 표정으로 건초를 되새김질하는 소

콘크리트죽을 섞으면서 달리는 레미콘은

스무드하게 현재를 수행한다

접시를 씻거나 마우스를 부리는 일로

회전근개파열 따위

욱신거려 돌아눕지 못할 때

 

후회 없는 생이란 없지

카페인이 아니라 후회 때문에

어두운 광장을 지나 낯익은 냉장고를 찾아가는데

 

신호등 앞에 멈춰 서서

무료한 되새김질을 반복하던 한낮의 레미콘

훅 끼치는 건초 냄새

잡식의 새똥 냄새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에 내걸리는 현수막이 과격한 것은

물기 다 빠져 금이 쩍쩍 간 외벽의 금단현상 때문이다

콘크리트죽을 자주 쑤는 꿈속에선

계속 물이,

물이 모자라고

 

지퍼가 열렸다 동굴 입구였다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환하게 끼얹어졌다

 

― ≪문학저널≫ 2021년 여름호

출처 : 미디어 시in(http://www.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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