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
백은선
붓꽃이 폈다
꽃잎을 죄다 뜯어놓았다
어디로 갔니 연락도 없이
별이 쏟아지는 밤
숲은 끝없이 길어진다
나는 눈 뒤의 눈
흔들리는 것은 전부 빛이라고 믿어
몇 번이나 없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머리끝까지 물에 들어가기 전에
두 발이 먼저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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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다. 언제 어디로 떠나 버렸는지 알 수 없다. 한마디 말도 없이, 연락도 없이 숨어 버린 사람. 그를 더듬느라 ‘나’는 온몸 온 마음이 불덩이가 되었다. 이토록 활활 타오르는 애증의 열기. “꽃잎을 죄다 뜯어놓았다”는 말에 깃든 쓰라린 살기 그리고 매혹. 시들면서 더욱 진해지는 어떤 보랏빛처럼.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 정념을 어쩌지 못해 밤의 숲을 하염없이 헤매는 이의 스산한 맨발 같은 것을 상상하며 이 시를 읽는다. 끝없이 길어지는 숲은 언제쯤 끝이 나려나. 두 발은 언제쯤 멈춰 서려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죄다 뜯어 놓은 붓꽃의 꽃말은 “좋은 소식”. 붓꽃은 봄에 핀다. 꽃봉오리 따위가 벌어지기에 알맞게 따스한 계절. 어쩌면 이다음 봄에는 지극히 원하는 소식이 마침내 당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선 이 뜨거운 시간을 무사히 건널 것.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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