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설] 1965 / 강인한
1965 강인한 Ⅰ 일천구백육십오년의 가을이 부두를 떠날 때 겨울은 점령군처럼 급히 왔다. Ⅱ 부러울 게 없어야 할 시절에 교정에서, 그 커다란 미루나무 아래서 모표를 반짝이며 애당초 글러먹은 기후와 시를 이야기하던 친구가 몰래몰래 막걸리를 마시더니 무섭게 자라버린 그 친구가 애당초 글러먹은 나라의 특등사수가 되어 터지는 포화 속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우리들은 말릴 수가 없다. 사랑하는 친구가 떠난다 해도 사랑하는 친구가 우리를 떠난다 해도 하나 안 기쁘고 하나 안 슬픈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년. 하나도 하나도 안 기쁜 환송을 받으며 친구는 웃었다. Ⅲ 일천구백육십오년의 가을이 부두를 떠날 때 잠도 안 오는 이국 산천이 한꺼번에 빨려들어 풍선 속을 팽창하다가 수천의 비둘기 똥에 짓눌렸던 게지 짓눌려 터지는 소리가 우리들의 방 문풍지를 울렸던 게지.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년. 사랑하는 친구가 젊디젊은 나이를 총구에 달고 가버렸을 때, 겨울은 무심히 우리들의 텅텅 빈 가슴에 무심히 겨울은 닻을 내렸다. Ⅳ 칫솔에 묻어난 피를 닦는 일상의 어느 아침 문득 받아든 에어 메일, 친구의 얼굴이 두 손바닥으로 감쌀 수 있는 그래서 안녕이 더 그리운 수만 리 밖의 체온 체온을 만질 수 있는 문명을 감사해야 할까, 날아온 친구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는, 하늘이 뜻한다면 고향 집 마당도 쓸고 보리밥 된장찌개도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낯선 바람에 깎여 코가 커지고 눈알이 파래진다고 사랑하는 친구는 웃고 있지만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년. Ⅴ 일천구백육십오년의 겨울이 우리들의 내장 속에서 정박을 하고 우리들은 지금, 글러먹은 땅에서 어차피 굴러먹는다. 창자 속에 얼어붙은 겨울을 꺼내어 개선장군처럼 웃는다. 산다는 것이 즐거워서 웃는다.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년. Ⅵ 일천구백육십오년의 가을이 부두를 떠날 때 우리가 떠나온 그 교정의, 그 미루나무 아래에선 우리들의 동생이 글러먹은 기후와 시를 마시며 아, 무섭게 자란다. 미루나무는 이파리도 없이 무섭게 자란다. (1965.11) ....................................................................................................................................................... 나는 전주고등학교 시절에 문예반인 '맥랑시대(麥浪時代)' 동인이었다. 신석정(辛夕汀) 선생님이 지도교사였고, 당시 학생 잡지 《학원學園》이 고교생들의 산문 이삼십 매를 게재할 때 우리는 곧잘 원고지 일백매가 넘는 단편소설도 끼적이면서 도무지 무서울 게 없었다. 동인 중 몇은 흑석골이라는 골짜기에 찾아가 객기를 부리며 막걸리를 마셔대기도 하였었다. 우리는 형제 이상으로 친하게 어울려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다들 제각기 흩어져 갔다. 나도 대학에 진학했지만 허무하기만 하고 왠지 정붙일 곳이 없었다. 이 무렵 1965년은 대학 4학년 시절이다. 몇 달을 두고 전국의 대학생들과 국민들의 들끓는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급기야 박정희 군사정권은 굴욕적인 한·일 협상을 타결시키고야 말았다.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베트남 전선에 비둘기 부대, 맹호 부대가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파병되었다. 월남전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우리 나라에 용병을 요청하였고(당시 박정희 군부가 파병을 요청했던 사실을 감추고 미국의 요청이라 거짓말로 속였다), 박 정권은 개발 독재에 필요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젊은이들의 목숨을 주저 없이 빌려준 것이었다. '맥랑시대' 친구들 가운데서 1년 선배인 오홍근 형이 맹호 부대로 가게 되었다. 몇 친구가 모여 흑석골로 갔다. 형제 같은 친구를 전쟁터로 보내는 자리였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었지만 조금도 술이 취하지 않았다. 부산항의 부두는 가을이래도 바닷바람이 세었을 것이다. 그 뒤 다낭에서, 퀴논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채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홍근 형의 편지가 왔다. "하늘이 뜻한다면, 고향에 돌아가서 된장찌개에 보리밥을 실컷 먹고 마당을 쓸어보고 싶다."고도 했고, "미군 C-레이션을 까먹다 보니까 나도 코가 커지고 눈알이 파래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익살을 부린 편지도 있었다. 나는 「1965」라는 이 시에 도대체 글러먹은 한·일 회담과 월남 파병을 담고 싶었다. 한·일 회담에 반대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시 정치 상황에 비추어 만용에 가까웠으므로 나는 시의 행간에 그것을 감춰 넣었다. '일천구백육십오년'이라는 거듭된 반복이 무엇인가 더 말할 듯 말할 듯하면서 말을 삼켜버린 느낌을 받도록 하였다. 후렴구 같은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년'에 물론 시의 음악적인 효과를 어느 정도 고려한 면도 있었다. 친구가 전쟁터로 떠남과 동시에 이 나라엔 겨울이 닥쳐오고, 그 겨울이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상황인데 우리들 다음 세대 역시 똑같은 겨울을 무섭게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극의 계승을 나는 쓰고자 하였다. 비교적 차분한 심정으로 「1965」는 쉽게 씌어진 셈이었다. 이 시는 서너 차례의 옮겨 쓰기 과정밖에 거치지 않고 완성되었다. 부산항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전송하던 수많은 손과 손, 풍선을 하늘 높이 띄우고 비둘기 떼를 한꺼번에 날려 보내던 그 뉴스 영상이 지금도 흑백 필름으로 내 기억의 한편에는 남아 있다. (2002년 「현실 인식과 시 정신의 균형」 부분) |
'비평·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인한의「신들의 놀이터」/정채원 (2) | 2023.10.13 |
---|---|
기형도의 「진눈깨비」 / 박소란 (0) | 2023.10.02 |
미학/김언 (0) | 2023.09.13 |
백은선의 「좋은 소식」/박소란 (0) | 2023.09.01 |
기호 너머의 기호, '모비딕'/손택수 (1) | 2023.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