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팅
ㅡ 한영선
생물과 공학이 입체적으로 연동되는 프로세스를 전산화에 입
증하시오.
흰 종이에 DNA라 쓰고 읽으면 조작 가능한 모든 것들이 떠오
른다. 나는 언어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전기와 가늘게 이어진
회로들을 사랑한다. 회로처럼 머릿속을 떠다니는 활자들, 활자
의 입자는 점과 선 사이 섬광으로 있는가. 나는 공학적으로 태어
났는가. 가능성을 탐닉할수록 나는 어디론가 연동되었다.
과학 선생을 사랑했던 것과 과학을 사랑하는 것 중 배후에 숨
은 것을 고르시오.
미래에는 과학을 외국어로 규정한다는 법이 제정되었다. 그때
부터 초끈이니 상자 안의 고양이니 꿈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부
드럽게 뭉개지는 발음이 되었다. 입속으로 흘러내리는 웅얼거림
이 되었다. 학계에서는 언어를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나
왔다. 변동하는 체온이 주된 이론이었다.
레바논 해변가에 파묻은 편지지가 심장까지 도달할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감정은 연동으로 번역되는가. 입속을 겨냥한 총구가 떨리는
것은 죽음으로 낭독되는가. 거기 검은 배후가 있는가. 나는 끝나
지 않는 음모를 사랑한다. 음모는 음모만으로는 성립되지 않고
검은 베일과 어두운 그림자, 텅 빈 무대로 다시 구성되고 있다.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인간의 프로세스다.
텅 빈 무대 위
침묵
이제 이미지를 잘라내시오.
제1회 가히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가히》202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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