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 한영수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은 살아있네 무서운 기색도 없이 등을 곧추 세우고 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네 생활은 겨울이고 왜 동백나무는 서서 생활의 복판에 떨어진 꽃 하나 저녁의 둘레를 도네 소리도 향기도 섞지 않고 붉은 색은 눈에 가슴에 스며서 번지지만 꺼내기가 어렵네 무엇이 꽃이 되는지 지면서 여기서 순간은 어떻게 영원에 닿는지 눈보라 속의 통로를 여는지 큰 수술을 앞두고 현관을 나서기 전 미등을 끄고 수도꼭지를 잠그고 한 번 더 돌아보는 심정으로 자꾸 나는 더듬거리네 꽃을 버린 꽃을 어긋나면서 피는 꽃을 여기 꽃이 있다, 꽃보다 큰 꽃을 고립되면서 독립하는 꽃을 눈은 숨차게 쌓이고 눈 속은 붉은 꽃 소용돌이 나는 갇혔네 *체공녀 강주룡 ; 평양 고무공장의 여공. 1931년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제17회 서정시학상 수상작] 《서정시학》 2023년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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