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미래서정 2023 제 12호/서정시학회 편

Beyond 정채원 2024. 4. 2. 01:22

 

 

   권두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2023년의 겨울이다. 전쟁 무기들의 이름이 뉴스에 수시로 노출된다. 마치 옆집의 끼니를 걱정하듯, 경쟁하듯 전쟁무기들을 지원하고 있다. 새로운 무기들이 점점 더 멋지고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챌린저 2 전차, 미국의 M1에이브럼스 탱크, 독일의 레오파드2 전차.
내가 지금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 운을 맞추고,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를 좀 더 세심하게 하고 책상 앞으로 갈 수 있을 뿐이다. 힘없는 전쟁 난민들이 맞을 겨울을 염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갈 곳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정혜영(시인) 
 
 
 
 
 
   나는 날마다 가출한다
 
 
   양균원
 
 
   소소한 순간이 다가와서
   이런들 저런들 곁을 스치자
   바람 쐬러 간다고
   한 대 태우고 오겠다고
   그렇게 영영 사라져 버린 영혼을 찾아
   소년은  가출한다, 소녀는 가출한 소년을 찾아 가출한
다, 소년은 가출한 소녀를 찾아 출가한다, 소녀는 물가에
남는다
   내가 가진 판본은 그러하지만
   내가 최종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욕조를 비울 때마다
   흡인하듯 빠져나가는 
   지상의 헛구역질이 범종 갈라지는 소리를 낸다
   꽃병에 꽃이 꽃혀 있지 않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인정하는 대청소 날이 오면
   당신이 끓여 준 된장국, 당신이 그려준 하트, 당신이 대
필한 원고, 당신이 밤낮으로 접속한 몸의 단축키, 그 무수
히  만개한 안개꽃 소수점들이 흔들렸다 지고  쓸리고 치
워지는 어느 날 어느 탁자 어느 빈 병 하향 곡선을 따라
   한순간이 소소하게 미끄러지면
   천천히 수직 추락하는 유령이 딱 숨골에 멈추면
   화요일 오후, 아니  월요일이거나  수요일, 아니 아침이
거나 저녁, 시간의 경계가 사라져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
고, 어쩌면 지금도 없는
   그런 찰나들이 침상에 쌓여 푹신하게 당신을 품는 밤이면
   잘 지내고 있다, 다만
   어쩌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