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절벽
해안 절벽 찰랑이는 물결에 목을 걸고 바위가 떠 있다
바위 표면은 살려고 납작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것들로 희끗하다
내 눈에다 깊이 그것을 담으려 하지만
자주 물처럼 흔들려 어렵다
그것을 내려보다가 난 그만 울컥하였다
왜 슬프냐고 당신이 물었다
왜 슬프지 않으냐고 내가 물었다
만 년 전에 해안이 밀려와 여기 도착하였고
천 년 전에 높은 산으로부터
이 바위가 조금씩 굴러와 여기 잠겨 있을 텐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다
당신에게 자갈 하나 주워 건네는 것으로 다였다
어떤 그림
미술관의 두 사람은 각자
이 방과 저 방을 저 방과 이 방을 지키는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은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다
자신들은 서로를 깊게 바라보다
만지고 쓰다듬는 일로 바로 넘어갔다
두 사람은 각자 담당하는 공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란히 공간을 옮겨 다녔다
그림이 그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두 사람을 그림 안으로 넣겠다고
그림이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이병률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학과지성사, 2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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