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
조정인 애도가 빽빽하게 꽂힌 항아리에서 한 송이 애도를 뽑아 영정 앞에 놓았다. 오늘, 나는 나를 조문하러 왔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장례는 모든 사람의 장례. 가령, 칠순 H 선생의 장례에 갔었던 스물일곱 꽃다운 나는 나의 장례에 미리 갔었다는 얘기, 생각해보면 오래전 나와 다가올 나를 울다 왔으니. 그로부터 석 달 뒤에 치른 나의 장례엔 나만 다녀가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인 복수의 내가 다녀갔다는 얘기. 더러는 등을 돌리고 더러는 마주보고 더러는 무리 짓고 더러는 혼자 멋쩍어하며 한 솥에서 나온 흰 밥과 붉은 육개장과 절편을 복수의 내가 우물거리는 일회용 간이 식탁. 잇새에 낀 나물 줄기를 빼는 어두운 손가락이 잇새 안쪽에 낀 제육 부스러기를 더듬는 캄캄한 혀를 만난 은밀한 일을 뒤로하고 장례식장 회전문을 밀 때, 문밖 한옆에 비켜서 있던 한 무리 검정 넥타이를 맨 낯선 나, 나, 나… 오늘 나는 나를 조문하고 갔다. 〈다층〉 2020년 겨울 ........................................................................................................................ 코로나 팬데믹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쓴 시이다. 그 무렵, 별 수 없이 3차까지 예방접종을 하고 와서 남긴 기록을 펴 본다. 이틀 전, 코로나 3차 백신을 접종했다. 당일은 별 반응이 없었는데 어제 낮부터 슬슬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메슥거리고 오한이 나서 벌벌 떨었다. 타이레놀을 5시간 간격으로 삼키고 무조건 잤다. 그리고 지금 신체 일기는 대체로 맑다. 전혀 동의한 적 없이 맞게 되는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국내에서만 4천 명을 넘었다. 전염병,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외부요인으로 사망하게 되는 수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흔히 생존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또한 보장 받은 생존이 아니다. 누구라도 잠정적 사망자일 뿐이다. 얼마 전에는 시인인 지인이 코로나19로 유명을 달리했다. 감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데… 2. 3일 앓고 나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는데……. 이덕주 시인이 코로나 감염으로 작고했다는 기별을 들었다. 너무나도 어이없고 허망했다. 시인이라고 가공할 전염병에서 예외일 리 없겠지만 한동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남긴 근작 저술 『톱날과 아가미』(2018,동쪽나라)를 넘기는 마음이 참담했다. 그 역시 삶 전반에 대한 구상이 있었을 테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려 애썼을 테고, 어쩌면 다음 작품집을 구상하고 있었을 테지. 그와는 문단 행사에서 3, 4회 마주친 게 전부이지만, 지금도 품이 너른 이미지에 말없이 미소만 지나가던 그의 면면이 눈에 선하다. 포유류 전반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죽음의 덫에서 살고자 발버둥치는 예외 없는 존재들이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라는 졸시가 있다. 이 발언은 과장도 비유도 아닌 실존적 발언이다. --------------------- 조정인 / 1953년 서울 출생.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 『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웨하스를 먹는 시간』. |
'비평·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정채원 (1) | 2024.08.30 |
---|---|
김륭, 「서로 등 돌리고 앉아서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빵을 먹고」 평설 / 박남희 (0) | 2024.07.18 |
장석남의 「내일」 /유진 (0) | 2024.07.07 |
권혁웅의 「잠만 잘 분」 / 이설야 (0) | 2024.06.28 |
정채원의 크레이지 타워(Crazy Tower)/박해람 (0) | 2024.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