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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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장옥관 시집

Beyond 정채원 2024. 9. 20. 00:05

 

 

 

 

 

일요일이다

 

장옥관

 

 

다시 일요일이다

태양은 여느 태양과 다르지 않다

 

어제 그 자리 그 시간에 조금 옆쪽으로 비켜앉았다

직접 보진 못하고 감은 눈으로만 보았다

 

어젯밤엔 초나흘 달을 보았다

눈 아래 찢어진 흉터 같았다

그제 밤에 본 것보다 좀더 벌어져 있었다

 

파밭의 파가 조금 더 솟고

자두나무 가지가 조금 더 처진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다

 

그젠 삼십 년 입은 바지를 버렸다

옷을 버리는 일은 슬프다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有情)한 일이다

 

다시 일요일이라서 슬프다

하루하루를 버린다

어제보다 우주가 조금 더 옮겨 앉았다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학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