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일지
백현
1.
돌도끼를 차고 사냥을 나간 너를 기다리며 나는 덤불을 들춰 열매를
모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마주 보는 눈동자에서
안타까이 발화하는 소리가 말이 되며 떨리는 목울대를 만져 보았을까
야습이 있던 밤 피투성이 몸뚱이로 돌무지에 던져진 내 눈에 들어오던
월식의 밤하늘 달을 덮은 지구별의 그늘에서 먼 길을 돌아온 기억이 나
를 깨운다 번개가 긋고 가는 한순간 다가오던 너의 눈빛
2.
헤매어 다니던 석기시대의 벌판 어디쯤에서 나를 잃었을까 동굴속 모루
돌 아래 고이던 침묵의 그늘을 지나 불타는 듯 뜨거운 너의 이마 위에 떨
어지던 꽃잎을 지나 나는 어느 시간에 잡혀있는지
몇 겹 지층 속 돌칼과 나란히 뼛조각으로 묻혀있는 너의 타버린 꿈을 발굴
한다 강을 건너 나뭇가지 사이를 달려오는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간다 검
게 그을린 고인돌 아래 주저앉아 너무 늦게 돌아온 자의 비망록을 적는다
《서정시학》 202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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