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완전히 동일한 두 개의 잎사귀/이장욱

Beyond 정채원 2024. 10. 13. 11:58

완전히 동일한 두 개의 잎사귀

 

이장욱

 

 

완전히 동일한

두 개의 잎사귀를 찾아오세요.

그러면 우리는 신이 되는 것인가?

그렇대.

그렇다. ​

 

영원회귀는 영원하고

오늘도 또 야근이구나.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태양의 주위를 돌 뿐이니까

당장 떠나요. 제주로.

지중해로. ​

 

거길 꼭 가야 해?

우리에게는 해변으로 난 창문이 없는데

창문은 사실 필요가 없는데

우리 각자가 이미

바다이기 때문에. ​

 

엔트로피의 원리에 따르면

당신의 사망 소식은 온 우주에 퍼져서 어느덧

다른 소식과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평평해질 것이다.

그 위로 낙엽은 떨어지고

떨어졌다는 사실조차

사라지고 ​

 

그걸 옛날에는 고엽이라고 불렀대.

아, 이브 몽땅 말인가요?

베트남전 말입니다만······

마른 잎 죽은 잎이 정말 살아날까.

겨울은 어디서 오는 걸까. ​

 

영원히 회귀하는 인과의 사슬이다.

질량 불변의 법칙이야.

죽고 죽이는 자연의 무심한 반복이죠.

글로벌 자본주의 ······

우리는 무한히 변하는 존재이니

서로에게 외계인이면서 동시에

동일인이잖아요. ​

 

약을 먹고 약을 먹고 약을 먹고

우리는 어째서 서로를 닮아가는가?

계급이 다른데 그게 되겠어?

하지만 봄날은 가고 다시 오네.

당신 머리 위에 새잎이 돋았어요.

아아, 완전히 동일한 두 개의 잎사귀는······

존재하지 않았다! ​

 

그러면 제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곡목은

김민기의 상록수

 

 

 계간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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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시 등단. 2005년 《문학수첩》에 장편소설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음악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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