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비평·에세이

정채원의 「Beyond The Scream*」 해설/ 김재홍

Beyond 정채원 2025. 4. 5. 22:39

Beyond The Scream*

 

정채원

 

 

벽장에 넣어둔 가방이

새벽까지 뒤척거린다

 

가방 안에는 백 년 묵은 얼굴

뭉크 전시회의 입장권

카푸치노 두 잔의 영수증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이따금 기지개를 켜는

기억의 올이 지금도 풀리고 있는지

 

휘갑치기, 사슬뜨기

더 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

 

바세린을 발라 둔 단면이 있다

자꾸 갈라지고 터져 피 흘리는

끝단을 쓰다듬는 밤

 

절규(Scream) 이후

귀를 틀어막아도

하늘 너머 또 어떤 하늘이

꿈틀거리며 밀물지고 있는지

 

한 바늘씩 혹은 두 세 바늘 건너

휘갑치기, 사슬뜨기

더 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

 

 

* Edvard Munch 전시회

 

 

----------------------------------------------------------------------------------------------------------------------------

 

   시인은 화가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의 전시회 ‘Beyond The Scream’을 다녀왔다. <절규>를 기억하는 전시회 제목으로 절규 너머를 택한 것은 큐레이터의 권리겠지만, 이를 시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정채원의 고유한 선택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전시회의 기획 의도에 공감했음을 시사한다. 내면적으로도 하늘 너머 또 어떤 하늘이/꿈틀거리며 밀물지고 있는지절규 이후를 염려하는 시적 심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휘갑치기와 사슬뜨기를 계속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벽장에 넣어둔 가방이/새벽까지 뒤척거린다”. 그리고 가방 안에는 백 년 묵은 얼굴인 뭉크 전시회의 입장권과 카푸치노 두 잔의 영수증이 들어 있다. 뭉크와 시인을 연결하고, <절규>기억의 올을 연결하는 입장권과 영수증은 끊임없이 호응하면서 새벽까지 뒤척거린다”. 뭉크의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한 <절규>속 붉은빛의 율동과 절규하는한 인간의 둥근 얼굴처럼 뒤척거린다’.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 버릴지 모른다” (이승하, 화가 (畵家) 뭉크와 함께). ‘절규하는혹은 절규할 수밖에 없는세계의 음성을 말더듬이의 육성으로 구현해낸 이 작품을 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정채원의 Beyond The Scream역시 '기억의 올이 더 이상 풀리지 않게 뒤척거리는내면의 풍경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올이 풀리지 않는시편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재홍(시인, 문학평론가), 문학청춘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