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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나의 시, 나의 시론/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5. 4. 17. 10:18

나의 시, 나의 시론 / 정채원




변검쇼 1


  정채원




오늘은 석민이지만
어제는 명호였지요
원래는 영섭이예요
지금 당신에게 영섭이가 말하는 거예요
영섭이의 말은 믿어도 돼요


석민이는 늘 쥐색 정장 차림
바지 주름 칼날같이 세우고 다니는 사람
명호는 무릎 튀어나온 코르덴바지에
담뱃재 희끗희끗한 티셔츠 바람
회칼로 반대파의 목을 따고도 귀갓길
말기 암 어머니 전화 목소리에 귀가 젖는 사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에게
맘 놓고 속내 다 털어놓듯
비밀처럼 꽁꽁 숨긴 당신의 아픔
다 털어놓아도 돼요, 영섭에게
이제는 당신의 눈빛만 보아도 다 알아듣는 영섭에게


석민이도 아니고
명호도 아닌
영섭이가 지금 말하는 거예요
당신을 진정 사랑해요
아니, 결코 널 용서할 수 없어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지금은 문 닫을 시간입니다
널 죽여 버릴 거야, 오, 오…… 당신을 사랑해요
영섭이의 말은 믿어도 돼요


           시집『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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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점과 몽타주




   시공간적으로 서로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 존재들,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현상들도 그 발밑을 파내려 가면 깊은 심연에서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수 세기 전 어느 순교자의 죽음과 지금 뉴욕 8번가를 걸어가는 소녀의 눈물, 태곳적 북극 바다와 엊그제 지진으로 무너진 남아메리카의 고층빌딩,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과 생명체들이 얽히고설켜 무변광대한 그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때론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다. 지금 여기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 속에서는 그곳이 감옥이라는 걸 잊어버릴 때라야 비로소 탈출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절해고도에 유배되어서도 그곳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돼지를 기르던 영화 ‘빠삐용’의 드가(더스틴 호프만 扮)처럼.


   작품 속에서 서로 상이한 시간이 겹치고 인과성을 결여한 행위들이나 이질적인 장면이 이접된다.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들,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볼 수 있는 가능성에 노출된 것들이, 단단히 묶여 있던 제 사슬에서 풀려나오는 특이점에 도달하기를 소망한다. 몽타주는 유사한 이미지들을 연결하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을 충돌시켜 기이한 사태를 불러내려는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체험, 기이하고도 낯선 경험을 시적인 힘으로 끌어올려 폭발하듯 몽타주의 특이점이 발생한다. “다른 세상을 흘낏” 엿볼 수 있을 때까지, 오늘도 피 흘리며 시간과 공간의 벽을 뚫고 또 뚫는 나와 미지의 독자가 순간이나마 함께 같은 파동에 떨 수 있기를. 얼핏 보면 전혀 무관한 것들,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하는 내 몽타주기법의 저변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기대고 있다’는 불교의 ‘연기론’이 깔려 있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군상들이 버글거리며 서로 눈을 흘기다가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지, 증오와 연민으로 들끓으면서. 그러나 또 어쩌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 모두가 다 ‘나’이며 또 ‘나 아닌’ 것을. 「얼음도 1초에 수백 번 춤춘다」고 쓴 적이 있다. 자기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 쉬지 않고 변한다는 그 사실만 변하지 않을 뿐, 무자성(無自性)이다. 마당 한쪽 구석에 있던 먼지가 바람이 불자 반대쪽으로 휙 돌아눕는다.


   ‘갇혀있음’을 참을 수 없는 내 영혼의 해찰을 목마름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비록 숨 막히는 감옥에 갇혀 저 멀리 날아가는 비행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처지라 해도 우리는 눈 감으면 날개를 달 수 있다.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다. 신문지 한 장만 한 햇볕을 쬐더라도 저 광야의 태양을 꿈꿀 수 있듯이. 요요를 힘껏 던진다. 가능한 한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라. 그러나 끝내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길을 잃지 말고. 간절히 기다리는 나를 잊지 말고.


   그럼에도 시를 한 편 쓰고 나서 다음 시를 쓸 땐 지금까지의 시론을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 어떤 시가 어떤 양상으로 내게 쳐들어올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뜻밖의 설렘과 절망이 나를 태우고 가보지 않은 세계로 달려 갈 것인가. 몇 갈래로 분열된 주체가 어떤 통로로 분열된 대상과 만나 폭발할 것인가. 나는 이 순간도 떨며 기다린다.         


   
               ―《상징학연구소》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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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원 / 1996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