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타스
김래이
봄은 오면서 가는 것 같다고 당신이 말할 때
벚꽃은 날아가면서 사라진다고 나는 말했죠
거리는 잘 차려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데
사진을 찍을 때만 걸음을 멈추죠
한 여자가 줄기를 잡아채 볼에 가져가죠
여자의 친구가 바통을 넘겨받고
잡아당길수록 벚꽃은 자꾸 돌아가고 싶죠 허공으로
화관을 쓰고 날개옷을 입고 하나 둘 셋 소리에
얼어붙는 요정들이 있어요 꽃 같은 건 관심이 없지만
요정의 흔적은 남겨서 하원해야 된대요
나무는 정물일까 동물일까 당신이 물을 때
공중에서 밝은 건 땅에서도 밝다고 나는 답하죠
네 사람이 한 나무 아래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요
사진첩에 담긴 같은 풍경이 우리를 더 닮게 하나요
한 장 두 장 아름다운 건 저장하고 싶어요
자꾸 절단하고 싶어요
이게 다 벚꽃이라는 계절 때문이죠
가서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계절이 있죠
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
당신이 그랬나요
하지만 헛된 것은 중독성이 강해요
언제 한번 보자는 인사처럼
파도가 모래성을 훔쳐가는 속도일까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말이죠
걷듯이 안 걷듯이 서듯이
내가 당신에게 가는 속도인가요
한때는 허물어지는 것에 감탄하고 싶어요
공중에서 밝은 건 땅에서도 밝다고
수챗구멍은 잠시 꽃바구니가 되고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시와 반시》 2025년 상반기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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