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웹진 시산맥 작품상 >수상작
버드나무는 잠을 자고
이승희
코끝이 수면에 닿을 듯했다. 물 밖에서 물고기들이 버드나무 잎 속으로 하나둘 들어가고 있었고, 또 다른 잎에서는 버드나무 잎에서 놓여난 물고기들이 하나둘 물속으로 잠겨 들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혼곤했다. 버드나무에 바람이 불면 물속과 물 밖이 마주 보며 함께 흔들렸다. 오래전 연인처럼 반짝였고 세상에는 오직 그 모습만 있는 것 같았다. 세계의 끝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따스하고 무료해서 마치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가에 오래 서 있었다. 알 것 같은 사람이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멀리 바다를 지나가는 배처럼 깜박이며 알 수 없는 이국의 말로 이야기했다. 내가 물속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버드나무 아래에서 버드나무 잎사귀에 부서지는 햇살을 보고 있다. 눈부셨다. 눈부신 이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생각했다. 한 번도 눈부신 적 없는 생이 자꾸 어딘가로 가려 했을 때 나는 햇살을 보고 아팠고, 바람을 보고 슬펐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나눌 수 없으니까.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으니까. 아직도 아름다움이 뭔지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은 내 것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는 어떻게든 있고 싶었는데 나는 어떻게도 없었다. 버드나무 잎사귀 하나 툭 하늘로 떨어진다.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남았을까. 밖은 여전하구나. 버드나무는 잠을 자면서도 물속과 물 밖의 풍경을 꼭 쥐고 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속으로는 어떤 길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흔들리고 있을 촛불을 향해 나는 물속을 지나가고 물속은 나를 지나간다.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약과 공터/허연 (2) | 2025.06.07 |
---|---|
아버지 옷/장석남 (0) | 2025.05.28 |
런웨이/한정원 (0) | 2025.05.13 |
그랜드 투어/김정진 (1) | 2025.05.07 |
새의 구두/손음 (1) | 2025.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