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꽃 피던 밤
권대웅
빗소리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그만 엉엉 울었어. 꿈인 줄 알았는데 꿈속인 줄 알았는데 빗방울 건너 구름 너머 언덕배기 모과나무가 있던 집이 떠올랐어. 잠깐 다녀온다 하고 길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꽃이 지는 길을 지났을 뿐인데 그만 까무룩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잊어버렸던 거야.
꽃이 필 때마다 설레임보다 목메임이 먼저인 이유를 알았어. 바람이 공중에서 펄렁 불어올 때마다 그 소리가 울컥 목에 걸리는 이유를 알았어. 땅거미가 질 때마다 몸이 쑤셨던 것, 누군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꾸 뒤돌아보고 싶어졌던 것, 햇빛에 눈부셔 눈물이 났던 것.
모과 꽃 속으로 들어가 모과 꽃 속 너머를 지나야 또 다른 모과 꽃나무가 있던 마당과 그 창가에서 기다리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지금 이 생은 모과 꽃 지는 곳까지만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이어서, 저녁이어서, 몸이어서, 그만 늘 꽃잎으로만 지고 말았어. 그런 봄날이었어.
계간 『문파』 202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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