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스크랩] 열매를 맺는 방법/ 최승철

Beyond 정채원 2015. 5. 25. 14:56

열매를 맺는 방법

 

     최승철

 

 

 

   꽃을 전자레인지에 3분 정도 가열하면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삶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그냥 산다는 말 뒤편에 수은처럼 우울이 덧칠되어 있다. 유전적으로 말하자면 비만의 원인은 신석기 유목민의 DNA가 체내에 탄수화물을 저장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래 생각했다, 가, 비누 거품을 칫솔에 묻혀 이빨을 닦았다.

 

   밀알을 보면 눈이 아렸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요

   상상 임신이니?

 

   한시(漢詩)를 읽는 겨울밤이 따뜻했다. 양귀비꽃은 옮겨 심으면 죽는다. 새우 등에서 내장을 빼낸다. 고개를 문 안쪽으로 밀어 넣는 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 바람이 먼저였는지, 구름이 먼저였는지, 모든 메스미디어에는 배후가 있다. 니트는 옷을 뒤집어 세탁해야 잔털이 일어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있다.

 

   손에 스킨을 묻혀 얼굴에 바르다 알았다

   안경을 벗지 않았다는 것을

 

   나무 위의 어떤 원숭이는 다른 동물들의 교미를 보면서 자위한다. 아무도 도道를 아냐고 묻지 않는 시대, 고독한 것은 헤어진 애인에 대한 소외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道 위에 끝없이 서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백일홍 아래 붉은 우체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 질량이 큰 별일수록 중심 온도가 높아진다. 눈물은 열매처럼 뜨겁고 외로움은 낙화처럼 차갑다.

 

   물푸레나무가 잔물결을 향해 흔들리며

   강의 조용한 울음을 듣는 시간

   내 어깨가 자꾸 풍미(風味)에 젖어드는 것이다

 

 

 

                       —《불교문예》201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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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철 / 1970년 전북 남원 출생. 200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갑을 시티』『키위 도서관』.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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