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거리
정채원
꽃을 피우겠다고 공중을 붙잡겠다고 절벽 위 발톱이 빠지도록 옹크린 나무 한 그루, 피 흘리고 있네 웃기고 있네
화산재 덮여오던 날에 바다를 향해 굳어버린 그 여자, 아기를 안은 채 한 손으로 밀려오는 불덩이를 막겠다고, 막을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전신으로 아기를 감싸 안고 쓰러진 그 여자, 지금도 바다 쪽으로 기어가
절벽 위 반쯤 쓰러진 나무, 뿌리가 뽑힌 줄도 모르고 아직도 어떤 잎들은 타오르게 하고, 어떤 잎들은 시들어가게 내버려두고, 비린 바람에 나부끼며
돌로 굳어버린 그 여자, 바로 눈앞에 파도 소리 듣는지 마는지 전생을 바람으로 빗질하고 있네 이미 오래전 식어버린 모자상이 된 줄도 모르고, 구멍 뚫린 구경거리가 된 줄도 모르고, 아직도 아기를 안고 바다로 가겠다고 가겠다고
비린내와 꽃향기의 계절, 한밤중 절벽에 매달려 타오르며 쓰러지며, 손가락질받는 줄도 모르고 기어가는 여기는 어디쯤?
『월간문학』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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