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데카르트의 남겨둔 생각/정숙자

Beyond 정채원 2017. 9. 25. 12:40

데카르트의 남겨둔 생각

 

 

정숙자

 

 

아무래도 저 태양이

시지푸스의 돌일 거라고

그는 회의했다

 

창공의 불은, 빛은

그의 발이 미끄러질 때마다

덜컥!  흔들렸다

 

정오까지 밀어 올리면

여지없이 저쪽으로 서쪽으로 굴러 떨어져

바다 깊숙이 잠겨버리지 않는가

 

하지만, 또

 

이튿날이면 시지푸스는 제 심장과 맞먹는 돌을, 제 심장과 맞바꾼 돌을 정오까지 밀어 올리지 않는가

 

정녕 빨갛게 ―새빨갛게~

 

그러한 노역 덕분에…하도나 맑고 밝고 따뜻한 그의 이마로 인해…대지는 오늘도 펄펄 날지 않는가

 

시지푸스 오직 그만이

죽어지지도 않는 목숨을

다만 버릇이 되어버린 그 삶을

이어내고―이겨내고~밀어 올리지 않는가

 

이제 놓아라, 다시는 밀어 올리지 마라, 시지푸스여! 그만 넘겨라, 네 심장에 더 이상 끌질하지 마라.

 

신은 너무 오래 너를 속이고 있다

너의 신뢰를 비웃고 있지 않느냐?

 

네 돌을 품어줄 산은 어디에도 없다. 안 그러냐?

 

 

 

『서정시학』2017년 가을호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추프라카치아/문정영  (0) 2017.10.21
벽돌/오은  (0) 2017.09.25
어두운 습관/이화은  (0) 2017.09.25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박상순  (0) 2017.09.22
즐거운 독백/홍일표  (0) 2017.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