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오 은
얼굴이 여섯 개
영영 마주 보지 못하는 얼굴이 있었다
얼굴을 하나 가릴 때마다 그림자가 생겼다
얼굴 하나가 말했다
나는 너 때문에 각도가 생겼어 모서리가 됐어 너 때문에 부피가 생겼어 사람들이 들고나올 만한 너 때문에 무게가 생겼어 사람들이 치고받을 만한
여유가 생겼어 너 때문에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었어 뒤통수에 혹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어 앞이마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림자가 거대해졌어
그것을 묵묵히 나르는 사람이 있었다 삼백육십 개가 넘는 얼굴을 등에 지고 삼백육십 일이 넘는 날을 넘는 사람이 있었다 곱절이 제곱이 되는 삶이 있었다
영영 마주 보지 못하는 얼굴 하나가 말했다
나는 너 때문에 상상하게 됐어 굽는 것은 얼마나 뜨거울까 쌓아 올리는 것은 얼마나 지겨울까 찍어 누르는 것은 얼마나 잔인할까 찍어 눌리는 것은 또 얼마나 쓰라릴까
그것을 밟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을 뭉개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을 피하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었다
돌이 벽을 만나던 순간이 있었다
벽돌이 돌벽이 되던 순간이 있었다
얼굴이 여섯 개
얼굴 위로 다른 얼굴이
얼굴 옆으로 다른 얼굴이
그림자는 깔려 죽으면서 태어났다
『포지션』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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