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이장욱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고백이 놀라운 무기여서 벌판을 피로 물들인다면
대체 왜 고백을
긴 창 들고 적진을 향해 진군하기도 전에
크라이스트처치의 회전교차로에서는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서울의 창밖으로
눈 온다.
우리는 매일 창과 방패를 든 채
고백하고 설득하고 참회하는 벌판으로 나아갔습니다.
갑옷을 입은 채 온몸이 박살나고 뼈와 살이 튀어오르는 그곳으로
출근을
부서진 자동차에서 죽은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아무도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내리는 눈이 허공에서 정지했는데
그것이 기적이 아니었다.
꿈이 괴로워서 꿈속에서 계속 자살을 한다면
대체 왜 꿈을
가련한 자여, 죽음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발생입니다.
어느 아침에 문득 깨어났는데
수많은 전투를 치른 몸이 마침내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혼자 버려질 거라면
대체 왜 부활을
늙은 사람이 다가와서 그것을
평화라고 불렀다.
창을 버리고 자동차를 버리고 눈보라 속에서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손톱 발톱 끝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부활한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누구에게든 고백을 하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은 기적적인 세계였다.
계간 『문학동네』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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