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허수경

Beyond 정채원 2018. 10. 21. 10:11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허수경




내일은 탈상
오늘은 고추모를 옮긴다.

홀아비 꽃대 우거진 산기슭에서
바람이 내려와
어린 모를 흔들때

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
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
아랫도리 서로 묶으며
고추모 사이로 쓰러진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남녘땅 고추밭
햇빛에 몸을 말릴 적

떠난 사람 자리가 썩는다
붉은 고추가 익는다

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
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
아랫도리 서로 묶으며
고추모 사이로 쓰러진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시집『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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