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비만
정채원
소리소문없이 태워버려야지 미장원을 지나 순댓국집을 지나는 길목에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소문들, 삐쩍 마른 그 여자 내장엔 헛소문이 잔뜩 끼어 있다고, 내일은행을 지나 희망부동산을 지나는 길목에 안개처럼 앞을 가리며 둥둥 떠다니는 비계가 잔뜩 낀 말들
저 유해물질 가득한 잡음들, 마스크를 써도 허파꽈리까지 파고드는 불안들, 소리소문없이 다 태워버려야지 학교운동장을 달리고 강변을 달리고 혈관 속 우울까지 다 태워버려야지 날려버려야지
물만 마셔도 허리둘레가 늘어나는 나이, 허파와 창자와 콩팥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허공 때문일까 십년 묵은 병석을 털고 떠나간 친구와 심장마비로 하루아침 떠난 동생까지 내 내장 사이에 지방을 쌓는다 갑작스런 이별이 나를 쓰러뜨릴지도 몰라 하나 둘 줄어드는 버팀목들 대신에 나를 버티려는 것일까 어제의 눈물과 오늘의 후회 사이사이로 지방이 쌓여간다 쓸모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몸속 허공을 어찌 태워 없앨까
『문파』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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