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걱정인형/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0. 4. 1. 00:09


걱정인형


정채원



걱정의 활용법을 알려줄게

걱정은 헤엄을 잘 쳐

조금씩 핏줄 속으로 흘러 들어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

하늘이 무너지기 전

잠시 문자를 보내려 자리를 뜬 사이

책장이 무너져 내렸지

부러진 시곗바늘을 껴안고 잠들었지

꿈속에선 만나는 얼굴마다 다리가 부러져 있고

빗길을 절룩이며 끝없이 걸어가지

젖은 옷은 마르기 전에 다시 젖고

마주 잡는 손마다 축축하지


부은 발을 뜨거운 욕조에 담근 후

한숨 푹 자고 나면 잊혀질 겁니다


간신히 입꼬리를 올린 후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사람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내가 잠든 동안

새벽까지 쉬지 않고 걸어도 나는

집에 당도하지 못하네


다 지나갈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긴 가뭄 속에도 빗길을 절룩이며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걱정을 품에 꼭 안고 가네

푸른곰팡이가 꽃처럼 피어난 그의 볼을 한 점씩 떼어먹으며

젖은 기억의 머리칼을 한 올씩 뽑으며 가네

걱정이 마를까 봐 걱정이네



『문학청춘』202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