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씩은 춤을
정채원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과
어디선가 막 도착한 사람들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람처럼
밤부터 아침까지
뜬눈으로 무언가를 기다린 사람처럼
매일 9시에 인형이 나와 춤을 추는
역사의 시계탑 아래
모자를 쓰고 가방을 끌고 우산도 없이
빵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춤추는 인형을 기다리다
더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과
기다리지 않았어도 약속한 듯 마주쳐
잠시 함께 춤추다 스쳐가는 사람들
사과 한 알을 쪼개 나누고
몇 알의 사탕을 부스럭거리며 껍질째 건네다
문득 시계를 바라본다
광장에는 역이 있고 상점가가 있고 그 뒤엔 교회가 있고
그리고 병원이 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춤출 수 있는 인형처럼
캄캄해져도 아파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 시계 뒤에 못 박혀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먼저 떠난 사람들은 지금쯤
천만 광년 떨어진 나라
어느 먼 시계탑에서
종을 치거나 북을 치고 있을까
지난밤에도 한밤중 자다 깨어
느닷없이 춤을 춘 사람이 있고,
팽팽한 대낮 뙤약볕 아래
주차 문제로 처음 보는 사람과 드잡이를 하다 말고
한숨 쉬며 춤을 춘 사람이 있다면
먼저 떠난 사람들이 아득히 먼 별에서
제 흩어진 뼈마디를 모아 치는
종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누구든 떠나야 할 이 별에서
『서정시학』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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