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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진짜'의 힘/신수정

Beyond 정채원 2020. 8. 28. 23:23

[삶과문화] '진짜'의 힘

 

 

홍수 속 '지붕위 황소 구조작전'
작지만 현장의 구체성 감동 줘
사실 보도 갈수록 찾기 어려워
간명·정확해야 오래 살아남아

 

 

장장 53일 동안 이어진 장마 동안 여러 언론에서 연일 토해내는 뉴스를 접하다가 이 첨단의 복제기술이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오래된 ‘이야기’ 매체의 단순함과 무관하지 않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여럿 있었다. 비구름의 이동경로와 강수량을 예보하는 한편 수해 지역과 이재민의 현황과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보도 속에서 하천 범람으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던 구례 양정마을의 소들이 간신히 지붕 위에 올라 하룻밤을 버티다가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기중기를 동원한 ‘황소 구조작전’에 힘입어 마침내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특히 그러했다.

“찌그러지고 파인 지붕 위에 홀로 고립된 소는 진정제가 담긴 화살촉이 엉덩이로 날아와 꽂히자 격하게 몸부림쳤습니다.” 현장의 영상과 더불어 소개된 SBS 기자의 이 멘트는 이 한 대목만 떼어 놓고 보더라도 그 어떤 소설의 묘사보다 못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홀로 지붕 위에 남아 있다가 진정제 주사를 맞고 주저앉은 소를 구출하기 위해 구조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현장의 모습만 있는 그대로 전달할 뿐 여기에 자신의 주관적 감상을 뒤섞지 않았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그에 따르면 구조대는 사다리를 타거나 기중기 고리에 몸을 묶어 주택 앞뒤에서 지붕 위로 올라가서 소의 기운이 빠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목과 뿔에 줄을 걸어 더는 저항하지 못하도록 건물 철골에 묶어 맸다. 그리고 선임급 대원이 재빨리 소 등에 올라타 무게가 고루 분산되도록 목, 앞다리, 뒷다리에 굵은 밧줄을 걸었고 그 결과 엉덩이에 첫번째 진정제 주사를 맞고 1시간20분을 버틴 소가 마침내 기중기에 끌어 올려져 지붕 위에서 네 발을 떼게 됐다.

이 기자의 건조한 사실 보도는 이후 이어진 비슷한 종류의 다른 보도들, 예컨대 이 소의 출산 소식을 전하며 이틀 밤낮에 걸친 빗속에서의 버티기를 새끼를 밴 어미의 절절한 모성애의 발로로 해석하고 있는 글들과 분명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어떤 칼럼은 이 소식과 더불어 “동물도 제 새끼는 본능적으로 보호한다. 사람도 이런 것은 배워야 한다”며 “생명의 탄생, 얼마나 소중한가. 오히려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고 논평하고 있는데 칼럼의 성격상 필자의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글이 현장을 전달하는 저 기자의 단순한 목소리를 뛰어넘는 감응력과 공감을 발휘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기자 역시 이 소에 대한 대견함과 애잔함이 없었을 리가 없다. 소를 구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구조대원들의 노고를 응원하지 않았을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그는 대견하고 애잔한 마음과 구조대원들에 대한 격려를 절제했다. 다만 그는 폭우가 쏟아지는 현장에 오랜 시간 나가 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어떤 분위기와 사실을 명확한 언어로 정확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구조대원이 소에게 줄을 걸었다고 하면 될 것을 소의 ‘목과 뿔’에 줄을 걸어 ‘건물 철골’에 묶어 맸다고 하고, 소 등에 올라탄 ‘선임급 대원’이 소의 ‘목, 앞다리, 뒷다리’에 굵은 밧줄을 걸어 ‘1시간20분’ 만에 결국 끌어내리게 되었다고 보도하는 식이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듯한 이 현장의 구체성은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사안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목격한 자의 목소리에 깃든 ‘진짜’만의 아우라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식의 보도는 기자의 직업윤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이제 이 간명하고 구체적이며 정확한 사실보도가 최근 들어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듣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도 않다, 사실에 대한 엉뚱한 해석을, 혹은 선입견이나 음모론에 근거한 사실의 왜곡을. 나는 다만 듣고 싶을 뿐이다, 알고 싶을 뿐이다, 사실을, 사실 바로 그것만을. 나머지는 내가 판단한다. 속담이나 경구들이 그러하듯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아 아직도 인구에 회자하는 이야기치고 간명하고 구체적이며 정확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 뉴스의 가치는 그것의 기원이라고 할 현명한 이야기꾼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ㅡ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