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정채원 문은 조용히 닫혀 있다 새집 같은 아파트 거실에서 한 사람은 신문을 읽고 또 한 사람은 TV를 본다 먼 곳에서 지금 막 도착한 듯 머지않아 어디론가 떠나려는 듯 소파 끝에 반쯤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남자 내뿜는 담배 연기에 여자의 얼굴이 조금씩 지워진다 야트막한 원탁을 사이에 두고 잔 꽃무늬 스탠드 불빛 아래 코가 닿을 듯한 두 사람 한 그림자는 왼쪽 모서리에서 목이 꺾여 있고 다른 그림자는 오른쪽 구석에 가슴이 접혀 있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일상이 제거된 일요일 저녁 뻐꾸기가 울고 있다 벽 위에서 정채원 시인의 「소풍」을 읽는 순간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떠올랐습니다. 호퍼의 그림들은 현대라는 세상이 빚어낸 현대인의 근원적인 고독과 절망 같은 감정들을 환기시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