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불멸의 온도와 습도 외/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1. 6. 3. 17:32

   불멸의 온도와 습도

 

   정채원

 

 

   장기는 전부 제거하고

   화학 목욕을 시켰지

 

   불그스레 좋은 혈색은

   내가 바라볼 때만 그런 걸까

   뒷거울에 비친 그는 늘 푸른 얼굴

 

   푸르게 죽어 있으면서

   푸르게 살아 있지

   2천 년 전 죽은 여인의 탄력 있는 피부를 만져본 그 때처럼

 

   애도는 적정 온도와 습도를 지켜야 해

 

   기억의 내벽에 구멍을 뚫고 등잔을 켜놓았어 불빛에 벽화가 어른어른

밤새 내 안을 긴 다리로 걸어다녔지

   아침 햇살이 등잔을 훅 불어 끄기 직전까지

 

   바람 부는 밤이면 벽돌을 한 장씩 빼어내, 어느새 두 장이 세 장이 되고,

벌어진 틈으로 불멸이 살며시 드나들 수 있을 때까지

   그 틈으로 하얀 향훈이 새어나올 때까지

   슬픔이 그 입김에 몸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내 장기는 다 빼내고 뇌만 남겨 두었지

   화학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기억은 썩지 않아

 

   뒷거울로 보면 뒤통수가 늘 푸르게 살아 있지

   푸르게 죽어 있지

 

 

 

   연금술사

 

 

   눈을 뜬 채 한잠 자고 나면

   읽던 책 몇 페이지가 금으로 변하는 날이 있었어

 

   그러나

   울다 잠든 다음날 아침이면

   그 자리엔 표지가 구겨진 책 한 권이 놓여있었지

 

   반쯤 타다만 책을 끼고

   비오는 거리를 걸어 다녔어

   죽음처럼 다정한 빗방울

 

   불타는 빗방울

   옷걸이처럼 목이 꺾어진 빗방울

 

   세상의 뒤통수가 두 개로 다섯 개로 보이는 날

   비에 젖은 책장을 넘기다 잠든 다음날

   밤새 노랗게 불탄 머리카락이

   금실금실

   베게 위에서 기어 다녔지

   토스터에서 방금 튀어나온 따끈한 태양을 향해

 

 

  《포엠포엠》 202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