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수선화 감정/최문자

Beyond 정채원 2022. 3. 14. 22:23

  수선화 감정 

  최문자

 

 

  꽃꿈이였다

  수선화 한 송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슬프네슬프네 하면서 나를 따라

다녔다 슬프다고 나에게

  도착하는 것과 슬프다고 나를 버리는 것 사이에 나는 서있었다

 

  아침, 꽃들에게 물을 주면서 트롯트 가수처럼 흰꽃에게 물었다

  새삼스럽게 네가 왜 내 꿈에서 나와

 

  꽃꿈을 꾸는 동안 코로나 확진 받고 한 청년이 다섯시간 만에 죽었다

뉴스가 시청 앞을

  통과하고 반포대교를 건너 남해 저구항에서 첫배를 타고 소매물도까

지 건너가는 동안 이윤설

  김희준시인이 죽고 최정례시인까지 죽음을 포개는 동안

 

  나는 우두커니 서있는데

  베란다에서 수선화 한 송이가 신나게 피고 있는 거야

 

  죽음은 꽃과 별과 죽은 자들의 변방에서 얼어붙은 채 감쪽같이 살아

있었던 거야

 

  한 번도 붉어보지 못한 이 흰 꽃이라도 사랑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

서 나처럼 물을 주고 나서

  죽은 자들 모두는 흡흡거리며 각자 죽음의 언덕을 다시 기어오르고

있었던 거야

 

  공터에서

  한 사람의 마음 이쪽과 저쪽을 돌아다니다가

  죽음이

  익명으로 숨죽이고 있는 나를 찾아내는 거야

  등짝에 툭툭 별을 떨어뜨리는 거야

 

  산책을 하다가도

  나는 정말 죽었는가? 하고

  사람들은 죽음을 꽃처럼 바라보았다

 

  오래오래

  이토록 허약하고 목이 메이는 부분을 사람이라고 부르며 나는 사람

을 쫓아다녔던 거야

 

  아무도 부르지 말고 피자 꽃피자

  아침에도 수선화는 그냥 그렇게 피었던 거야

  격렬한 신념 같은 거 없이

 

  이런 흰 꽃이 죽어라고 피면 죽음도 그칠 줄 알았나?

 

  뉴스와 창백한 오후와 거친 밤이

  마스크를 쓰고 날마다 나에게 팔을 내미는 거야 손을 내미는 거야

 

  꽃꿈은

  설레임이 아니고 새파란 공포인 거야

 

 

  『현대시』 , 2021, 3월호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얼굴/김상미  (0) 2022.04.03
본섬/안희연  (0) 2022.03.19
웃자는 얘기/복효근  (0) 2022.01.29
11월/나기철  (0) 2022.01.29
물결/최금녀  (0) 20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