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한때 해변이 되고자 했으나/김관용

Beyond 정채원 2022. 4. 3. 10:53

한때 해변이 되고자 했으나

 

여기서부터가 그의 얼굴입니다

목도 아니고 머리카락도 아닌 이 난해한 세계

사랑이 끝나기 전엔

외로워지더라도 나기기 힘든

내내 궁금해하던 섬입니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하게 흘러가는 씬 같지만

새벽에 배달된 달걀처럼

신선한 공기가 시작될 겁니다

선을 긋고 나자

이제는 신경전입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왕국이다 싶지만

대부분 죽은 자들입니다

발자국은 왜 모래가 아닐까요

지도에도 없는 저급한 마법입니다

썰물이 지고 폭죽이 터지는 밤

당신이 지나는 길목과

내가 간신히 걸어 나간 저녁이 겹쳐질 때

무릎은 굴복합니다

심장은 잠시 오른쪽으로 밀어둡니다

마음이나 감정이 아니니까요

이름도 산지도 표기하지 않은 커피를 뜯어서

좀 진하게 내립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을 끄고 바닥에 눕자

머리 위로 느릿느릿 악어가 지나갑니다

마지막 장면은 항상 수평이네요

하지만 현관을 열면 거기까지가 얼굴입니다

오늘은 너무 외로워서

칫솔을 두 개나 꺼내놓고 사용했습니다

 

 

우리들의 얼굴 찾기 3 《그의 얼굴》, 한국시인협회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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