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
잠깐 울었다 미래가 생겼다
스무나무 연두는 지나갔어도
무덤은 부풀어 오른다
둥글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를 가졌다
죽었어도 그날 손목의 시계처럼
정확하게 살아나는 한때가 있다
메추리나 까투리가 지나간 게 아니었다
시작이 있었고 너는 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아직
우리는 세계였다
고독이 온다
시시포스가 온다
시발시발이 온다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오 층으로
올리고 올리고
걸어 내려가 다시
들어 올려야 하는 바위
택배 덩어리가 온다
오늘의 기온은 체온을 초과하고
아무리 걸어도 끝장을 볼 수 없는 거리
자신의 미궁을 향해
아니오, 세 번도 더
뱉어 내는 비명
뭉개진 눈코입이 온다
온몸이 온몸을 밀면서 온다
계단만으로 만들어진 집
무릎을 굽히며 막고 있다가도
한번은 터져 나오고야 마는
불립문자
시발 한 덩어리가 온다
혼자서 온다
무쇠문 현관 틈새를 벌리며
차마 받을 수 없는 두 손은
그만 도망치려 하는데
밤보다 더 밤 같은
한여름 한낮이 온다
머리도 꼬리도 없는 고독이
고독을 밀어 올린다
한영수 시집 《피어도 되겠습니까》, 파란시선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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