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ick
정채원의 시들은 도통 나이를 알 수가 없다. 애늙은이이거나 철없는 어른 같다. 그저 상상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숙성된 사유를 짐짓 외피적 현상으로 그려낸다거나 단순한 대상에 본원적 가치를 덧씌우는 모습이 대단히 자유분방하고 융숭깊다. 감각과 사유가 한데 고이지 않고 매 시편마다 제각각 통통거린다. 시는 무엇에 제한을 두지 않고 넘나들며 시를 3D나 4D쯤으로 조립한다.
(...)
가을호가 나가지 않았는데도 벌써 시집이 쌓인다. 행복한 고민은 두어 달 묻어놓을 참이다. 문득 시집에 붙은 이름이 허명 같을 때가 있다. 부풀려진 이름값 말이다. 시집에서 시인의 이름을 빼면 어떨까? 아주 큰일이 날까? 등단 매체와 문학상, 마피아 카르텔 같은 이상한 조직의 후원 없이 시로만 읽히면 안될까? 보르헤스처럼 혹은 프로젝트 음반처럼, 시인의 이름을 지우고 이름 자리에 '티파니' '난파선 조타수' '팔월폭설' '복숭아' 이런 이름을 붙이면 안될까? 정말 안될까…… (발췌)
김병호 시인(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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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자들에게/정채원
왜 시를 쓰세요? 아직도 시를 쓰세요? 왜 그리 열심히 쓰세요?
오랜만에 마주친 이웃 뿐 아니라 이따금 보는 동창까지도 그런 질문을 던진다. 심지어 어떤 시인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를 써야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남다른 결핍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일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의식 보다는 바닥 모를 무의식의 세계가 더 넓고 깊다. 어떤 집단 무의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 시인들은 그 그림자의 세계, 대항할 수 없는 원형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며 신음하며 때로는 즐거워하며 시를 쓴다. 나는 내 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휘둘리며, 그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어 그를 받아적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
말해야 한다. 그러나 끝까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는 자의 목마름이 거듭 시를 쓰게 한다. 뱉어내는 순간 의도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굳어지는 언어들. 과연 어떤 언어로 이 세계를, 나를, 그리고 너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불가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 그것이 나의 시쓰기이리라.
《시로여는세상》 202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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