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제5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고독한 사랑의 가능성/차성환

Beyond 정채원 2022. 12. 14. 17:59

고독한 사랑의 가능성

-정채원 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천년의시작, 2022) 서평/차성환(문학평론가)

 

 

   정채원 시인은 인간의 몸이 단순히 뼈와 살과 같이 물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 비루한 육신 너머에 초월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유한자로서의 우리의 몸은 죽음으로 종결되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의 육신 너머의 어떤 초월적 지점, 무한에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를 새롭게 갱신시킨다. “백만 년 전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울고 처음부터 다시 싸워 처음부터 다시 사랑해”(꽃 피는 단춧구멍들). 그의 시는 울음의 갱신이고 싸움의 갱신이고 사랑의 갱신이다. 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천년의시작, 2022)는 어떤 의미에서 가히 종교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숭고한 투쟁의 기록이다.

 

광선은 손마디의 뼈와 반지를 통과하지 못했다

감광판 위에 하얀 그림자를 남겼다

문 열고 들어가도 볼 수 없는 너의 내부

그 길을 지나간 발자국, 지문, 혹은 죽은 새의 깃털

 

바람에 휘날리는 오색의 룽다처럼

네 안에서 세차게 흩날리는 것

역풍과 마주하며 젖은 얼굴을 감싸는 것

끝까지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목마른 손짓 같은 것

 

죽은 예수의 몸을 감쌌던 수의처럼

지울 수 없는 피 얼룩이 번져 있는 것

 

성배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우기면서도

끊임없이 성배를 찾아 헤매던

 

살과 피를 밟고 나온 시간이

고뇌에 찬 네 얼굴에 남기고 가는 건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린 하얀 해골뿐일까

 

그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으로

출구를 찾지 못한 새 한 마리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울부짖던

노래의 살점들이

내 살 속에 피의 등고선을 그려 놓았다

-「피의 등고선」 전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피의 등고선X레이 감광판에 새겨진 의 형상을 통해 보편적 인간의 실존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손마디의 뼈모양대로 감광판 위에남겨진 하얀 그림자를 바라본다. “광선통과하지 못한 것처럼 의 내부를 다 꿰뚫지 못한 것이다. 그곳은 아무리 자신만만한 과학문명의 기술이라도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의 내밀한 안쪽에는 그 길을 지나간 발자국, 지문, 혹은 죽은 새의 깃털과 같은 어떤 흔적만이 잔해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를 찾으러 가는 은 고통스러운 순례의 길이고 끝까지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목마른 손짓과도 같다. 그것은 바람에 가까운, 형체가 없어 붙잡을 수 없는 어떤 존재와의 싸움에 준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에 휘날리는 오색의 룽다처럼/네 안에서 세차게 흩날리는 것이다. “룽다”Lungda, 혹은 풍마風馬는 주로 티벳 고원이나 히말라야 설산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땅에 꽂아놓은 장대 끝에 매달린 오색 천을 뜻한다. 그 오색 천에는 불교의 진언眞言이 적혀있고 바람이 불어 천이 펄럭일 때마다 그것을 쓴 불자의 기도가 신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룽다바람이 불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장대에 매달려 있다. 이처럼 를 찾아가는 길은 불가능에 가깝고 요원한 일이다.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것, ‘라는 존재는 오색의 룽다죽은 예수의 몸을 감쌌던 수의로 비유되는데, 바람에 펄럭이는 천의 이미지는 살아있는 인신人神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고통으로 변주된다. 진리를 쫓아 끊임없이 성배를 찾아 헤매는 종교적 고행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것의 실체에 도달하고 싶지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이고 는 그 속에 출구를 찾지 못한 새 한 마리에 불과하다. 어쩌면 인간은 라는 실존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고투 속에서만 발견되어지고 만들어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라는 존재의 기원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다. “하얀 해골과 같은 텅 빈 형해形骸만이 손에 잡힐 뿐, 마치 성배와 같이 초월적인 그것의 실체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시인은 그 불가능성과 마주하고 온몸으로 싸우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울부짖는다. 여기서 이 시는 존재의 자기 성찰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메타시의 자격을 갖는다. 시인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한 자각이자 선언이 되는 것이다. 즉 정채원의 시는 이 존재의 고통으로 펄럭이는 오색의 룽다위에 새겨진 피의 등고선이다. 내 육체 너머에 있는 무언가에 가닿기 위한 싸움은 자신의 피부 아래에 선명한 의 성흔聖痕(stigmata)을 남긴다. 이렇게 존재의 신음으로 가득한, 고통스러운 내면의 풍경을 본적이 없다.

   그의 시는 육신에 갇힌 자, 유한자의 존재론적 고독에서 시작되어 우주와 천체天體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된다. 자신의 몸 내부에 있는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피의 등고선)을 헤매던 는 어느 순간 생각의 꼬리에 매달려 캄캄한 우주를 홀로 유영”(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한다.

 

얼음과 먼지투성이 행성이 돌고 있다고

보이저호를 타고 가도 10만 년 거리라고

 

내 주위를 돌고 있는

다른 별이 있다는 걸 나도 알 수 있지

홀로 있어도

자주 흔들리니까

이따금 뜨거운 흐느낌이 밀려오니까

 

익룡이라도 되어 쥐라기 때

그를 향해 출발했더라면

지금쯤 만났을지도 몰라

 

다른 별의 파편이 수없이 박혀 있는

그 별의 표면 온도는 영하 170도

두 팔 힘껏 벌려도 안을 수 없는

 

대부분의 아픈 별들은 다른 별을 돌고 있어

막막한 우주에서

홀로 있지 않아

오래 춥고 어지러운 밤이면

나도 누군가를 맴돌고 있지

얼어붙은 입김을 불어 내면서

그의 한숨과 눈썹 표정을 받아쓰기도 하면서

-「홀로 아닌 홀로」 전문

 

   우주의 광대함에 비한다면 지구라는 별은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다. 그 지구에서 살아가는 라는 존재는 얼마나 보잘 것 없이 작은가. 우주의 들은 각자 암흑 속에서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서 보이저호를 타고 가도 10만 년 거리나 떨어진 곳에는 얼음과 먼지투성이 행성이 있다. 그곳은 인간의 기술문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행성이다. ‘는 우주에 혼자 외따로 떨어져 있지만 다른 별내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 먼 우주로부터, 어느 알 수 없는 행성으로부터 이따금 뜨거운 흐느낌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홀로 있어도/자주 흔들린다. “라는 낯선 행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지구가 생성하기 시작한 태초부터 그를 향해 출발했어야 겨우 가능했을 것이다. ‘의 사이에는 억겁에 가까운 시공간이 놓여 있다. “그 별영하 170로 생명체가 살수 없고 다른 별의 파편이 수없이 박혀 있으며 인간의 품에 안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대부분의 아픈 별들막막한 우주에서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별을 돌고 있듯이, ‘또한 다른 누군가를 맴돌고 있.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한숨과 눈썹 표정을”, “의 흔적을 받아 적는 것이다. 우주의 들은 외롭게 각자 홀로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별을 향한 보이지 않는 장력張力으로 인해 서로를 맴돌고 있다. “다른 별의 존재는 내가 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혼자 감당해야할 생의 아픔을 위로해준다. ‘의 존재는 유한자로서의 를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다. 우주 공간에 외로이 떠 있는 별과 같은 존재인 인간은 비로소 자기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다른 존재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인간의 몸 내부에서 의 근원을 찾으려는 모험과 지구 바깥의 광대한 우주에 떠 있는 행성을 향한 탐험은 동일한 층위에 속한다. 둘 다 도달불가능한 초월적 지점이라는 것이다. ‘는 그곳에 도달하고자하는 욕망에 의해서 구성된 존재이다.    ‘는 영원히 그것을 그리워하는 형태로 놓여 있다. 저 외부의 초월적 지점은 곧 라는 불가해한 타자의 한 점이다. “내 안의 어둠에 거꾸로 매달린 내가/어떤 해답으로도 결정되지 못한 채/야맹증이 점점 깊어 갈 동안”(연민 피로-C에게), 저 우주의 바깥으로는 무중력의 공간을 달려가는 그리움”(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이 작동하고 있다. 지구와 먼 우주의 다른 행성을 잇듯이, ‘를 잇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사랑의 기적이다. 그것은 시집 전체에서 시인이 스스로에게 고통스럽게 되묻는, “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도대체 사랑이란 게 있긴 있는가”(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살아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두개골 속 1.5킬로 고깃덩어리”(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를 가진 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다.

 

   정채원 시인이 보여주는 자기 몸에 대한 감각은 고통스럽고 쓸쓸하다. 그의 몸은 슬픔의 입자”(얼음도 1초에 수백 번 춤춘다)로 만들어져 있다. “세상은 누구의 울음주머니”(울음주머니)이고 의 육신은 얼음 상자 속에 염한 울음”(울고 싶은 자)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의 시는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가득하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나를 쓰러뜨릴지도모른다는 불안감에 쓸모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몸속 허공을 어찌 태워 없”(내장 비만)애야 할지 걱정한다.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 소멸한다. “그래도 쉬지 않고 썩어 가고 있었다.” “너나 나나 썩는 건 모두 시간문제라는 듯.”(졸다 깨는 시장) 시인이란 발굽을 숨긴 채/끝 모를 만장굴을 키우는 자들이고 제 안에 키우는 동굴 속에서 뜻 모를 신음소리만 내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괴물을 쫓는 자들이다. 그 동굴 속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팽팽하게 마주 보고 있다”(썩어도 건치). 시인은 그 인간의 내면에서 움트는 어떤 괴물과도 같은 목소리, “불긋한 핏자국”(진화론 P)을 받아 적는 이가 아닐까. 정채원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배후에 숨어 있는”(정면성의 원리), 존재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보기 위해 시를 쓴다. 그리고 그가 고독한 존재의 동굴 속에서 회오리 속에서도 눈 감지 못하는 나의 반쪽에 시달리고 실루엣만 남은 얼굴들/구겨진 마스크처럼 쓰다 버린 내 얼굴들/셀 수 없는 얼굴들이 출몰하는 변검의 밤”(짝눈 2)의 악몽을 거쳐 도달한 곳은 바다에서도 본 적 없는 주황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사막 호수”(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이다.

   “이 도시에 불시착한 사람들”(전신거울 파는 곳)은 자기 안의 어둠만을 응시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모두 다 스스로에게 함몰된 채 가라앉지도 떠오르지도 않는 영혼들”(인공 바다)의 슬픈 도시이다. 죽음은 삶의 내속적 조건으로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죽음으로 스러진다. 그러나 당신이라는 존재는 를 이 갇힌 몸속에서, 죽음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수 있겠다. 정채원 시인은 그 사랑의 불가능성에 자신의 시를 건다. 그는 먼저 떠난 사람들이 아득히 먼 별에서/제 흩어진 뼈마디를 모아/치는 종소리”(하루에 두 번 씩은 춤을)를 듣는다. “언제나 활짝 피어 있는 꽃은 꽃이 아니다. 질 줄도 모르는 건 꽃이 아니다.//나는 피었다가 기필코 지는 꽃을 사랑한다.”(비로소 꽃) 소멸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막 호수주황물고기는 불가능한 사랑의 이미지이다. 주황물고기는 캄캄한 터널을 건너온 사람들 머릿속에서 계속 헤엄쳐 다닐 것이다.

 

 

《시작》 2022년 겨울호

 

차성환    2015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연구서 《멜랑콜리와 애도의 시학》이 있음.  2018년 시작문학상 수상. 현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