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제5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시가 흐르는 아침>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Beyond 정채원 2022. 8. 24. 20:40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정채원

 

 


 쉬지 않고 내리는 빗물이 사막에 수백 개의 호수를 만든다. 우기가 끝나면 가장 깊어지는 수심을 들여다본다. 떨어져 있는 호수와 호수가 하얗게 타는 모래 밑에서 서로의 냄새를 더듬는다. 바다에서도 본 적 없는 주황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사막 호수, 석 달이 지나면 사랑은 말라버리고 모래에 처박힌 바퀴는 점점 더 꼼짝달싹 못 할 것이고.


 모래바람 속으로 눈썹에 내려앉는 모래를 깜빡이며 걷고 또 걷는다. 건기 뒤에는 우기를, 우기 뒤에는 건기를 마련한 건 누굴까?


 그러나 건기를 지나도 또 건기, 우기를 지나도 또 우기, 그런 마을도 있다. 모두가 메말라 기억의 핏줄까지 마른 잎맥처럼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지던 마을, 혹은 젖고 젖고 푹 젖어 푸른 곰팡이가 수국 꽃송이가 되다 쉰 밥덩이가 되다 수심 알 수 없는 웅덩이가 되던 마을, 모두가 제 안에 익사해 퉁퉁 불어터지던 마을, 살아도 살아도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죽어도 죽어도 죽어본 적 없는 얼굴로 분노의 고무줄을 계속 잡아당기던 마을, 의심을 풍선처럼 계속 불어 결국 터져버리던 마을, 욕망을 계속 가열해 사랑하는 이들을 다 태우고 깨진 유리창과 검은 재만 남기던 마을,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


 우기가 끝날 즈음, 도망쳐온 사람들의 사막에 피어나는 석 달 동안의 오아시스. 짧은 천국은 서서히 말라가고 갈라터진 바닥을 보이겠지만, 얼핏 본 주황물고기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계속 헤엄쳐 다니겠지, 다음 우기를 기다리면서.

 

 

 

<시작노트>


이 건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러나 머지않아 우기가 찾아올 것이란 믿음으로 우리는 버틸 수 있다. 사막에도 수심 깊은 호수가 생겨날 것이고 반짝거리는 주황물고기가 헤엄쳐 다닐 것이다. 그러나 또 머지않아 건기가 다시 찾아올 걸 모르겠는가. 건기에도 머릿속을 헤엄쳐 다니는 희망이 있어, 사랑이 있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이, 쉽게 이름붙일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 있다.

 

<울산광역매일신문> 2022/08/23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