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린 것 한 토막
비린 것 한 토막이 먹고 싶다 하셨네
할머니는 즐기던 녹두죽도 근 가웃 사태살 푹 고아 베 밥수건 밭여 끓인 장국죽도
곱게 쌀알 갈아 홀홀하게 익힌 무리죽도 응이[薏苡]도 기어이 넘기지 못했네
음식 솜씨 짭찔받던 그니는
뜬숯 피운 풍로에 새옹밥 짓고
적쇠 걸어 간갈치 한 토막 노랑노랑 구워내셨네
솔솔 김이 오르는 이밥 위에 얹어주던
그니는 잔가시 지느러미 살 발라 먹고
간지숟가락에 뜬 이밥 위에 실한 살점 골라 얹어주셨네
그니가 아, 하면 나는 따라 아, 입 벌려 받아먹었네
제비둥지 제비 새끼같이 받아먹었네
아시를 보고 생청붙이는 내게 빈 젖을 물려주던 그니가
이제는 북천(北天) 바다 갯내 같은 비린내를 풍기는 그니가
물 만 밥에 비린 것 한 토막 얹어먹고 싶다 하시네
나 혼자 아, 아, 입 벌려 받아먹던
그 비린 것 한 토막
새옹밥: 놋쇠로 만든 작은 솥에다 지은 밥
간지숟가락: 곱고 두껍게 만든 숟가락
생청붙이는: 억지스럽게 모순되는 말을 하는
홍경나 시집 《초승밥》, 현대시학 기획시인선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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