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
나비는 계단 한쪽에 앉아 생각을 접었다 펼쳤다 한다. 생
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날아가는데도 나비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리저리 날다가 생각이 엉킨다.
나비는 세상을 끌어내리다가 느닷없이 솟구친다. 정리도
되기 전에 나비의 생각은 바람에 떠밀린다. 찢어서 날리는
편지처럼 나비의 문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비는 골똘한 표정으로 이무데나 주저앉아 생각을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춘다. 그러다가 꽃이 될까봐, 그러다가 돌이
될까봐 나비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이 말 저 말 다 들으러 나비는 팔랑 귀를 흔들며 날아다
닌다. 나비는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나비의 현기증이 갈
수록 심해진다.
나비에게 생각할 기회를 한번 더 주려고 봄은 또 올 것
이다.
심언주 시집 《처음인 양》, 문학동네시인선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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