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비평·에세이

임재정의 「너머」/ 성윤석

Beyond 정채원 2023. 7. 24. 17:23


너머


임재정




여기에는 없어 눈을 감는다


눈을 가리면 다른 곳이 환해지는 인간을


풍선은 이미 아는지, 누르면 어디로든 부푼다


엄마가 폐부에서 부풀린 아이처럼


세상이 누르면 핑계처럼 집으로 불거진다


함께하는 이웃이면서 모르는 사람들, 마주칠까 봐 자주 눈을 감는다


아이가 품고 있는 시간이 풍선 속으로 건너가 쌓인다


조금씩 무거워지던 풍선이 덜컥, 무서워질 때부터 어른이란다


눈을 마주쳐야 하는데, 풍선은 불다 보면 눈을 감고 마는


이것은 엄마가 잃어버린 샛길


환영 허수아비 영혼 도깨비 귀신보다 더 무서워 눈을 감는다 내겐 풍선이 들려 있다


두려움도 없이 좀비처럼 풍선 안을 날뛰는, 터질 준비를 끝마친 미래


얼룩진 낮은 쉽게 세탁할 수 없는 밤이 될 것이다


비눗방울이 떠다니는 꿈에


눈꺼풀 속 한곳만 환해질까 봐 다시 눈을 뜬다


감지도 뜨지도 않은 중간이란 없어서


오늘을 끝내려고 시계를 만든 사람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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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공이기도 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시의 마지막 문장 ‘시계를 만든 사람을 떠올렸다’에 시선이 멈췄다. 시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찾아보니, 인류사에 최초의 시계는 기원전 2000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해시계가 최초의 시계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별시계, 물시계, 모래시계 등이 고안되어 쓰였다. 중세 이후엔 독일의 헨라인(1485-1542)이라는 기술자가 태엽을 이용한 회중시계를 처음 만들었다. ‘오늘을 끝내려고’ 시인이 최초의 시계를 생각하듯, 충일한 노동이 끝난 하루의 너머를 필자도 생각해봤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자의 너머에 비로소 기쁜 내일이 당도할 것이다.


  성윤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