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비평·에세이

장혜령의 「이방인」 /양경언

Beyond 정채원 2023. 7. 4. 10:04

장혜령의 이방인」 감상 양경언

 

 

이방인

 

장혜령

 

 

빛은 잘 들어옵니까

 

이상하지,

세입자가 관리인에게그리고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

 

불꺼진 독방의 내부는

누군가 두고 간

볼펜 잉크처럼 캄캄하다는 거,

의도 없이도 흐른다는 거

 

처음 타본 비행기와

어깨가 기울어진 한 남자의 뒷모습

 

그의 휘파람을

존경한다고 교도소장은 말했다

크고 두터운 손으로아버지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바람은 불어옵니까

 

진주식당의 여자는 국수 대신

빨래를 솥에 넣었고

 

예수기도회의 붉은 자전거 옆에는

북경반점 오토바이가

 

모든 질문엔

전학생의 시점으로

생각했지

 

경도와 위도 선상에서

초조해질 때마다

별들 사이에 길이 있다는 건더 확고해졌으니까

 

동료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삼키는 연습을 하는

수배자처럼

 

배후가 없는 비밀이 몸속을 떠돌고

 

깡통 속엔

씹다 뱉은 성냥들이

붉게 차오르곤 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더 말할 것은 없습니까

 

들판 같은 책상 위로

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간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

 

이상하지,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

 

어디선가

새들의 농담이 들리고

 

그의 내부를 바라본 것은저 나무가 유일하다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202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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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시가 무섭다한 사람의 목소리를 잠시 들었을 뿐인데 내가 속한 곳이 어떤 데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버지니아 울프는 갑작스러우면서도 완전하게 그 속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시의 영향력”(버지니아 울프정소영 역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온다프레스, 2021, 50)에 지배된 것이라 할지 모르겠지만(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소설에 비해 시는 단 한순간에몇 되지 않는 말을 건네며 이전과는 다른 이후를 연다),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내게 그게 정말인지’ 묻는 어떤 시의 취조 방식은 독자가 독자 자신만은 끝내 속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이어진다이처럼 우리 삶 한가운데로 쳐들어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는 일을 장혜령의 시가 한다.

 

   “세입자가 관리인에게” 묻는 빛은 잘 들어옵니까라는 질문이 한순간에 죄수에게 묻는 질문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내가 사는 방은 안전하기보단 무엇이 갇혀 있는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이 된다내가 머무는 이곳은 어디인가혹 이곳에서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쭉 있어왔는데도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데 만족해하며 있었던 건 아닐까삶을 그저 그런대로 견디기만 하는 나는 누구인가한편시는 스스로가 낯설게 된 바에 더 멀리 가는 방법도 일러준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라는 질문 주위를 전학생의” 심정으로 기웃거릴 때이는 나를 이루는 것들 중 가둘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헤아려보자는 권유로 바뀌어 들린다나라는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비밀”, 어떤 글이 시작할 때 품고 있는 캄캄한” “볼펜 잉크와 같은 이 이때 고개를 든다.

 

   자기 앞의 좁은 책상을 들판으로 삼을 줄 알고, “저 나무의 시선을 단 한번이라도 의식할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위대한 혼자이다세상의 모든 한 사람한 사람은 다 그렇게 할 줄 안다이는 한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위엄을 제 몸으로 증명하는 시가 때때로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도 될 것이다.                  (한겨레  2021-09-03)

 

  양경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