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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오은의 「그것들」/이수명, 박소란

Beyond 정채원 2023. 8. 12. 01:06
오은의 「그것들」  / 이수명, 박소란




 
그것들 
 
 오 은


주머니는 감싸준다
실수할 때마다 주머니를 찾았다

아침에 나갈 때면
꼭 동전 몇 닢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카드만 쓰지 않아?
친구가 물었다

들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으로 말을 삼켰다
고개를 끄덕일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짤랑짤랑 소리가 얼마나 안심되는 줄 아니
머릿속에 서릿발이 서고
가슴속에 빗발이 칠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구리, 니켈, 아연, 알루미늄……
원소가 빛발이 되어 주머니 속에서 반짝였다

나갈 때
주머니는 하고 싶은 말들로 두둑했지만
돌아올 때
주머니는 상처투성이일 적이 많았다

속엣말이 불거지지 않게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매일 밤
상처를 입고 옷을 벗었다
매일 아침
상처 입은 옷을 입었다

온기를 내뿜으며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동전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것들을 감싸 쥔 손에 땀이 가득 맺혔다

짤랑짤랑
아침은 매일 찾아온다

 

시집 『없음의 대명사』 2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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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가 실수와 상처투성이다. 이것들이 저절로 치유되고 사라지면 좋을 텐데, 다행히 그렇게 되더라도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서 오늘 고통에 빠져,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문지르고 때로 덧나게 만든다. 만약 상처를 위로해 주는 주머니가 있다면, 거기에 모든 괴로움을 전할 수 있다면 좀 나을까. 나는 그렇게라도 한다. “아침에 나갈 때면/ 꼭 동전 몇 닢을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머릿속에 서릿발이 서고/ 가슴속에 빗발이 칠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전들을 만지작거”린다. 동전들은 짤랑거리면서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속삭여준다. 무슨 실수를 하고 무슨 무서운 일을 겪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동전이 주머니에 있으면 좋겠다. 내가 상처 입어 침울하고 “손에 땀이 가득 맺혀”도, 신경 쓰지 말라고 명랑하게 짤랑이는 동전들이 주머니에서 반짝이고 있으면 좋겠다.

 이수명(시인)
 
   
   몸도 마음도 고단할 때. 쓸쓸할 때. 하고 싶은 말은 눌러 삼키고 다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 때. 속에는 겹겹의 상처가 들어찬다. 찰수록 텅 비는 마음. 헛헛함. 마음을 닮은 주머니를 슬그머니 더듬어 본다면? 그 속에 일부러 동전 몇 개 넣어 둔다면? 저희들끼리 짤랑거리며 내는 소리가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다정한 속삭임으로 들리기도 할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그것들”은 필요한 법이겠지만, 온기 어린 손이나 상냥한 눈빛 같은 것이 아니라 고작 동전이라니. 동전으로써 간신히 마음을 다스리고 안도를 느끼는 사람이라니.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짤랑짤랑” 가벼운 박동이 때로 우리 삶의 적막을 메운다는 것. 

 
  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