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거울의 스푸마토/김경인

Beyond 정채원 2024. 1. 19. 14:21
거울의 스푸마토*


김경인
 


 
델은 아름답다는 뜻
그러니까 멀리 있는 것
 
히-노-데
안-드-레-아-사-르-토
공기 방울을 닮은 이름을
징검다리 삼아 겹겹 어둠을 건너면
 
이 밤은
자투리 물감으로
덧칠한 거울 같아
 
비 온 다음 기름 웅덩이에서
처음 본 어여쁜 무지개처럼
 
나는
콜타르 기억 진득거리는 채로
캄캄하게 굳어버린
 
몇십 년째 상영 중인 엉망
진창, 담배 구멍 난 장판
얼굴을
 
거울에다 잔뜩 눌어 붙이고
 
다시
 
히 노 데 안 드 레 아 델 사 르 토
 
엉터리로 지껄여도
꽃 이파리처럼 겹겹 흩어져
달콤하게 녹아 사라지는


아름다운 이름
 
밤이 기울어 쏟아진다.
담배 연기처럼 자욱해진 내 위로
 


*안개와 같이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깔 사이의 윤곽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옮아가도록 하는 명암법.
 


 
              —월간 《현대시》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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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 /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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