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완연히 붉다/김명리

Beyond 정채원 2024. 1. 22. 22:40

완연히 붉다

 

김명리

 

 

일몰 무렵 천변의

마구잡이 뒤엉킨 풀숲 가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아가야  부르며 다가가니

활시위 마냥 등뼈를 곧추세우며

빤히 나를 쳐다보는데 아아, 한쪽 눈

 

움푹 팬 눈구멍 속의

눈자위가 없다! 눈동자가 없다!

 

이렇게나 투명한 붉은 빛을 보았나

움푹 팬 눈구멍 속으로

거대한 일몰이 들어가 앉았다

 

눈물자국 대신 묵시록을

접힌 데 없는 광대무변을 꽃피웠다 완연히 붉다

 

 

 

《현대시학》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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