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
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
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 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
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눈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
고 있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제7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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