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이민 가방을 싸는 일/정영효

Beyond 정채원 2024. 1. 26. 01:10

이민 가방을 싸는 일

 

 

몇 개가 필요한지 몰라 세 개만 샀습니다

하나에는 옷을 담고 하나에는 잡화를 담고

하나에는 아직

 

혼자 떠나는데도 분리를 잘해야 하고

분리를 잘할수록 정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짐을 줄이며

짐을 늘리며

가방 안에 맞는 구조를 만들어 보다가

 

그 나라에는 비가 자주 온다고 해서

나는 우의를 챙겨 넣습니다

 

우의는 분명히 옷이지만

잡화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어느 쪽에 자리하든지 적당하다면

이름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한데

 

이곳에서는 내가 계속 설명되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나를 제일 모릅니다

 

먼 거리를 함께할 가방은

가로와 세로가 튼튼해 보입니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지만 도착한 기분으로

 

나는 생활을 이어 갈 구성을 찾습니다

짐을 푸는 순간 거주는 시작되니까

이곳과의 차이를 확인해 보면서

꼼꼼하게 우의를 입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몇 개가 필요한지 몰라 세 개를 샀습니다만

아직 하나는 비어 있습니다

 

 

 

계간《파란》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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