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동안의 이쪽과 저쪽
김길나
지하철 승강장 철로 이쪽과 저쪽에서 사람들이 마주보고 있다
집 나온 사람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주보고 있다
떠나기 위해서 안으로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마주보고 있다
안과 밖이 교체되는 현장에서 교체될 사람들이 마주보고 있다
2분은 짧고 무관심은 길다
내 안의 타인이 바깥의 타인을 마주보고 있다
공간이동의 속도를 잘라놓는 지하철 정류장에서
반대방향으로 갈라선 이쪽과 저쪽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멈춤과 출발의 간극 사이에 생겨난 스크린 도어는 지금 닫힌
문이다.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이중으로 닫혀 있다
스크린 차단막에 이중으로 차단된 저쪽 풍경이 몽롱해진다
이미 지하로 내려와 있는 것들이 안개옷을 둘러입었다
문이 벽인 스크린 도어에
어느 여행사의 광고문이 나붙었다
‘여기서 건널 수 없는 저쪽은 시간을 초월한 꿈의 세상이거나
시간 바깥의 지하세계입니다. 저쪽으로 가는 환상여행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이쪽과 저쪽의 선로는 원형 회로 선상에서 서로 휘어지며 합일된다
영원 회귀 같은 2호선의 순환 전동차가 삼킨 이쪽을 저쪽에다 토해놓는다
『애지』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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