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의 「선천성 그리움」감상 / 고두현, 황병승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1962~ )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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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왜 왼쪽에 있을까요. 보고 싶으면 두근거리고, 마주 보면 콩닥거리고, 안아 보면 화끈거리는 영혼의 숯불. 서로 껴안으면 오른쪽 가슴을 달구는 ‘선천성 그리움’의 잉걸불.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운명 때문에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처럼 화들짝거리고 ‘내리치는 번개’보다 더 뜨거운 사랑. 오늘은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보듬고 시인의 마을로 여행을 떠납니다. 강화도 다리 건너 초지인삼센터, 거기 늦장가 든 함민복 시인의 깨소금 같은 가게 ‘길상이네’가 있습니다. ‘달빛 찬 들국화길/ 가슴 물컹한 처녀 등에 업고/ 한 백리 걸어보고 싶구랴’(농촌 노총각)라던 그의 왼쪽에서 ‘선천성 그리움’의 몸짓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동갑내기 부인도 함께.
고두현 (시인)
당신을 으스러지게 끌어안아도 채울 수 없는 이 그리움이 선천적인 것이라면, 살며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쓸쓸할까. 서로를 품에 안고도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운명처럼 당신과 나의 이 가깝고도 먼 거리. 새떼는 막무가내로 날아오르고 번개는 내리치지만, 그리움의 출처는 알 길이 없다. 각자의 박동 속에서 각자의 피가 끓거나 식어간다. 심장의 위치를 바꿀 수 없다면, 당신과 나, 서로의 심장의 거리만큼 서로의 심장에 의지한 채 서로를 더 깊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수밖에.
황병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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