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경사
정혜영
1.
경사면은 옳다
모든 것이 깃들어 있다
순서 없는 저녁의 문장이 다투어 피어나고
울트라마린이 서쪽을 버티고 있다
2.
멀리 누군가를 부르는 희미한 밥냄새
3.
놀빛이 아름다운 것은 무언가 감추는 것이 있어서다
환한 시간의 뼈다귀,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낯선 음악
찬 바람을 흔들어서 빈 나뭇가지를 보여준다
주홍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유혹의 입구
4.
창문 너머 키 큰 플라타너스의 어깨는 흔들리며 흐르는 시간의 강
국경을 향해 어둠을 빗질하는 푸른 서쪽의 리듬
어둠에 별을 매달고 이름을 불러준다
너나우리해뜨기전
이름 붙일 수 없는 최초의 놀빛을 찾아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떠나온
그 테이블에
내가 쓰지 않은 문장이 놓여 있다
《시와함께》 2024 가을호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집/김조민 (0) | 2024.10.06 |
---|---|
걸어오는 십자가 1/전순영 (0) | 2024.09.28 |
내 아름다운 녹/장옥관 (2) | 2024.09.12 |
기면/정우신 외 (1) | 2024.09.12 |
운명의 피아니스트/진은영 (0)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