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름을 버릴 때
나비가 피는 계절이 있다
나비는 하냥 피어났고
내일도 필 것이다
나비가 피기까지 열세 마리 꽃이 날아들었다
꽃 이름을 부르면 나비가 쑥대밭이 될까 봐
눈으로 좇았다
나비가 정신없이 물들어 갈 때
꽃은 어디쯤 향해 뜨거워지나
손 지문 닮은 협곡을 따라
꽃이 빙빙
나비가 빙빙
암록의 베일은
몸 풀기 좋은 구유였다
눈이 쏙 빠지는 해산이 끝나면
세상은 변명으로 붉었다
나비
저녁에 이름을 버리고
아침에 혁명을 노래했다
동면에 드는 열세 마리 꽃들
검은 호리병에 담긴 모란
스며든 빛이
검은 호리병의 선을 뭉그러트렸다
사라진 선을 낱장으로 읽었다
오방을 떠돌다 온 바람이
모란으로 담겼다
봄빛 한 폭 베어와
그늘을 나누는 저들의 필법을
나는 오랫동안 훔치며
서성일 것 같다
시집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 (2024.10), 시작시인선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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