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독은,
나는 주전자처럼 고독하다, 독 짓는
늙은이처럼 고독하다
나는 모기 눈알처럼 고독하다
나는 난, 자동차 뒷바퀴처럼 고독하다 나는 왜 이렇게
고독한가
나는 시를 쓸 때만 고독하다 나는 나
시를 쓰고 나서도 고독하다
이 고독은 어디서 값비싸게 오는가 그걸 몰라서
근본을 알 수가 없어서
고독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
고독하다
고독이 왜 값비싼 것인지 그런 걸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이 고독하다
시인은 나에게
'나는 터널처럼 고독孤獨하다'고
엄살을 피웠다
거짓말!
터널을 찾아내 터널 깊숙이 들어가 터널에게 물어보니
터널은 고독과 친한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터널은 달랐을까
산티에고의 고독은 산티에고를 위해 유별난
것이었겠지
나는 정말이지 주전자처럼 고독하다 주전자 속에
끓고 있는
돌멩이처럼 고독하다
'고'는 덩어리질 고固 피고름 고膏와 가깝지 않아도
독버섯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독'을 단박에 삭히려고
독 짓는 이의 달항아리
달항아리 속에 들어찬 달빛 못지않게
고독하다
김영찬 시집 《오늘밤은 리스본》, 황금알 시인선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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